무늬의 교육학

[교육학] 우리는 왜 교육하고 교육 받을까? -3편

무늬 mooni 2023. 4. 7. 13:12

 

이번 주제의 마지막 편이야! 인성론적 결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번 챕터 창을 닫아볼게.

 

인성론적 주장의 특이한 점은 교육의 목적을 논하는 일에서도 서로 다른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야.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인성론에 바탕을 두고 교육의 궁극적 목적을 제시하는 예도 있어.

 

인성론적 주장 첫 번째

 

철학 사상의 오랜 논쟁거리가 되어온 정신과 육체의 문제와 더불어서 인간의 본성에 관련된 교육의 목적에 대한 견해를 검토해볼까?

 

전통적인 형이상학에서 궁극적인 실재가 무엇이냐에 대한 질문을 두고 정신적인 것이라는 주장과 물질적인 것이라는 주장, 그리고 둘의 병존이라고 설명하는 이원론적인 주장이 있어 왔어. 이러한 질문은 인성론에서도 비슷하게 제기 돼. 인간의 본질은 궁극적으로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것이냐 아니면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논란이 있어 왔어.

 

인간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

 

쉽게는 몸과 마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거야. 하지만 우리의 상식으로는 인간의 육체라는 것은 다른 물질적 실체, 예를 들면, 생명을 가지지 않은 물이나 바위처럼 그것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인간의 육체는 다른 물체처럼 하나의 공간을 점하면서 존재하지만 외부의 힘이 미치지 않으면서 움직이지 않는 물체는 아니야. 육체적인 존재로서 인간이 스스로 활동하는 것이지.

 

 

그리고 인간의 활동은 어떤 목적을 지향하며 결정하고 행사하고 자발적으로 이를 이행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느끼기도 해. 이런 사실은 인간이 단순한 육체적 존재가 아니라 정신이나 마음을 지닌 존재라는 증거가 되어줄 수 있을거야.

 

정신? 마음? 그게 뭐야?

 

정신이나 마음이 물질과 다른 점을 가진다면 그건 공간을 점유하는 점이야. 흔히 정신은 비물질적인 것이지만 하나의 실체로 이해되기도 해. 이 실체가 진짜로 인간 자아의 중핵을 구성하고 있다고 믿어지고 있지. 이 자아나 정신적 실체는 기쁨, 슬픔, 분노 등의 감정, 지각, 기억, 사고, 의지 등의 의식을 통해서 그 형태를 나타내.

 

하지만 자아와 정신적인 실체는 의식의 상태 이상의 것이라는 점!

 

이런 비물질적인 정신적 실체가 어떻게 물질적인 것 속에 위치할 수 있고 그 둘이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는 답을 하기 어려운 문제야. 말하자면 라일이라는 철학자가 '기계 속의 혼신'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은 설명이 어렵다는 거지.

 

데카르트는 마음과 육체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이 이원적으로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 별개로서 상호작용한다고 했지만 라일은 기계 속에 혼신이 있어서 혼신이 기계를 조종하는 방식으로 움직인다고 주장했고 때문에 이원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어.

 

이 두가지 관점을 우리는 유심론과 유물론이라고 불러. 유심론은 이원론을 부정하고 정신만이 실재하고 물질을 그것에서 온 것이라고 믿는 것이고, 유물론은 물질만이 실재하고 정신은 물질적 현상이라고 믿는 것이야.

 

이 두가지 신념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이론은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기도 했어.

 

유심론자

 

같은 관점으로 보는데도 서로 대립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게 신기하지?

 

유심론자들부터 살펴볼까?

 

유심론자들에 의하면 심리학은 인간 의식의 복잡한 작용들을 여러가지 요소로 분석해서 마음의 구조를 확인하는 것이고, 마음의 전체적인 구조는 부분들에 의해서 설명된다고 해.

 

때문에 교육은 의식의 여러 단편적인 기능들을 전체의 구조에 비추어 관련시켜 주는 일을 하게 되지.

 

유물론자

 

그럼 유물론자들은 어떨까?

 

17세기 영국의 철학자인 홀스는 모든 정신적, 심리적 현상은 신체적, 생리적인 현상으로 환원시켜서 설명될 수 있다고 하면서 유물론의 입장을 취했어. 현대에서는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모든 인간의 행위는 반사적이며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은 기계적으로 형성된다고 믿는 것이 주된 입장이야. 그러니까 명시적인 신체 활동의 관찰에 의해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야.

 

둘의 차이

 

정신 혹은 마음이 물질 혹은 신체와는 별개로 독립해서 존재한다고 믿는 유심론자나 이원론자들은 마음이 가진 능력들을 계발하고 이들을 균형 있게 전체 속에 통합하는 데 교육의 목적이 있다고 믿어.

 

반면에 유물론자들은 인간의 행위를 궁극적으로 물리적이고 생리적인 과정으로 보고 환경의 상호작용을 뜻하는 자극과 반응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키워내는 데 있다고 믿지.

 

인성론적 주장 두 번째

 

인간의 본성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소유하는 보편적 특징으로 이해되기도 해. 그래서 교육에서의 목표와 목적도 이에 따라 다르게 주장돼.

 

인간의 본성이 누구의 경우에도 누구에게나 같다고 믿는 사람들은 교육의 목적과 목표도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라고 믿게 되겠지?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엄격히 말해서 다른 동물들과도 구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육의 목적과 목표도 사람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성정되는 것이라고 믿을 거야.

 

이성은 인간만의 특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기초해서 '인간은 이상적 동물이다.'라고 하고, 이성은 바로 인간만의 특징으로서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본성이라고 믿으면서, 교육의 목적은 그 본성에서 도출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

 

토미즘의 교육철학자인 허친스와 아들러 등이 바로 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야. 이들은 이렇게 말했어.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라면 역사가 전개되어도 그 본성이 바뀔 수 없고 문화와 시대에 관계없이 건전한 교육의 프로그램은 언제나 일정한 특색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환경이 아무리 달라져도 인간의 본성은 언제 어디서나 같다.'

 

따라서 교육은 어디에서나 같은 것이 되지. 그리고 이들은 인간의 본성을 결정짓는 이성의 기능을 높이는 것, 즉 이성적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보았어.

 

그리고 그 능력은 인간 영혼이 본질적으로 가진 능력이야.

 

인간은 한 유기체일 뿐이다

 

세상에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거지.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서 존재하는 하나의 유기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적응하고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통해서 변화한다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변화가능하다는 점에서 찾아.

 

그들은 이런 특징이 없으면 학습도 있을 수 없고 교육도 의미가 없다고 믿어. 그들은 인간의 내면적 능력보다는 본능과 충동을 중시하는 면이 있지.

 

그러니까 그들은 교육의 목적은 성장하는 인간의 본능과 충동과 욕구의 발산 및 충족의 방향과 과정을 인도하는 데 있다고 믿었던 거야.

 

그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교육의 조건은 변화 가능성이야.

 

인성론적 주장 세 번째

 

인간의 본성이 생득적인 것이냐 후천적인 것이냐에 따라서 교육의 목적과 목표가 다르게 주장돼. 동양의 사상가들에서도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인성과 관련시켜 찾으려는 노력이 있어 왔어. 맹자는 인간에게 본래 배우지 않고도 아는 천부적인 앎을 뜻하는 '양지'와 배우지 않고 주어진 능력을 의미하는 '양능'이 있었지만 이들은 삶의 과정에서 혼탁해지고 숨겨져 있다고 했어.

 

이런 생각에 따르면 양지와 양능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것이 곧 교육이야.

 

왕양명도 천하의 모든 사물의 이치는 우리의 마음 속에 이미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이를 찾는 것은 곧 마음이 제대로 기능을 하게 하는 일이라고 여겼어.

 

왕양명에 의하면,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마음의 본체를 찾는 것은 곧 그 모든 것의 실재를 파악하는 일이며 인생의 도리를 아는 일이야. 그리고 그 마음의 본체는 곧 양지이며 이 양지를 찾는 것은 천리를 아는 것이야. 아무것도 섞이지 않고 더해지지 않은 순수한 마음, 즉 도심은 그 천리를 담고 있다고 말했어.

 

왕양명에 있어서, 그 본연의 고유한 앎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치지'와 마음 속에 있는 앎의 대상이 명백하게 된 상태를 뜻하는 '격물'이 교육의 원리이며 또 목적이라고 할 수 있어

 

치지와 격물을 위해서는 '극기'. 즉, 사욕을 제거하는 일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도 했어. 극기는 자신을 단지 고통스럽게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고 자아를 천리에 도달하게 하는데 요구되는 과정이야.

 

마무리

 

다들 공감하겠지만 인간의 본성은 인간의 천하의 수많은 것을 설명하면서도 온전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 중 하나야.

 

말하자면 인간은 자신을 설명하는 일에 가장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거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꼭 한 번 씩 하는 자기소개는 몇 번을 해도 어려운 것처럼 말이야.

 

나를 설명하는 것이 어렵고 그 방식도 다양한 것처럼 인성의 이론도 갖가지이고 인성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를 때 교육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